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살리에리 (문단 편집) == 생애 == [[https://m.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561159890|'2인자 콤플렉스'의 대명사 살리에리, 사실은 사람냄새나는 사람이었다]] 1750년 이탈리아의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상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형에게서 [[하프시코드|쳄발로]]와 [[바이올린]] 등을 배웠는데 상당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를 일찍 여읜 뒤 가세가 몰락했는지 이탈리아 각지를 옮겨다니며 살다가[* 정확히 말하자면 살리에리 본인에게는 유산이 상속되지 않았던 듯하다. 형들이 그를 돌봐주거나 아니면 아버지 친구의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1766년 당시 [[베네치아]]에서 만난 빈의 궁정작곡가 플로리안 가스만(Florian Leopold Gassmann, 1729 ~ 1774)의 후원을 받아 빈 궁정으로 진출하였다. 1774년에는 빈의 궁정작곡가가 되었고 1788년에는 드디어 궁정악장이 되었다. 훌륭한 음악적 능력과 '''원만한 인품''' 덕분에 재직기간 동안 왕이 여러 번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죽기 1년 전까지 궁정악장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빈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많은 음악가가 되었다. 그는 1800년대 초반까지 오페라를 많이 작곡했으며, 나이가 든 후에는 오페라 대신 종교음악을 많이 작곡하였다. [* 이는 살리에리의 대선배격 되는 작곡가인 [[요한 아돌프 하세]]나 [[발다사레 갈루피]], 오페라 개혁운동의 주요 인물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 등도 해당된다.] 살리에리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같은 동시대 작곡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했음은 물론이고 제자 양성에도 힘쓴 음악 교육자이기도 했다. 특히 나이가 든 후에는 작곡보다 음악 교육에 더 신경을 썼는데,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프란츠 리스트]], [[카를 체르니]], [[요한 네포무크 훔멜]], [[지아코모 마이어베어]] 등의 쟁쟁한 음악가들의 스승이었으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프란츠 자버 쥐스마이어와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등도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들중 상당수는 무명시절 궁핍하게 사는 경우가 많아서 '''전액 무상'''으로 가르침을 줬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난한 음악가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며, 중산층이나 부자 가문같이 재산이 많은 집안에서 자처해서 돈을 주고 가르침을 청한다면 돈을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받았다.] 당시 유럽 귀족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의 궁정악장이라는 위치때문에 명예로도 자산으로도 기행만 안벌이면 평생 아무런 문제없이 살 수 있으며 당대 음악계에서도 큰 손이었는데 이런 인물이 빈부격차 안따지고 후대의 교육에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큰 열의를 보인 것은 꼭 음악계만이 아니라도 당대에서 엄청난 봉사정신이었다. 당대의 평대로 인품이 매우 뛰어난 음악가였던 셈이다. 살리에리의 봉사정신은 단지 후대 교육에 멈추지 않았는데, 실직한 음악가 또는 사망한 음악가의 유족들을 위한 상조회를 조직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자선 콘서트도 '''매년''' 조직하는등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당대 후기지수들을 위해 엄청난 투자와 열의를 보인 대인배였다. 당시 살리에리 본인이 대표적으로 지적한 문제가 '태생이 이탈리아인이라 독일어가 어렵다' 정도였다. 독일어가 워낙 배우기 어렵기도 하고 이탈리아어와 여러 차이점도 있다보니, 독일에 있던 시간이 긺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독일어에 익숙해지지 못했다는 듯.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살리에리는 프랑스에서 명성을 떨쳤다. 오스트리아 빈 중앙묘지에 안장되었다.[[https://www.google.co.kr/search?q=Antonio+Salieri+Cemetery&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jleaLnqL-AhVEVt4KHX-_DJoQ_AUoAXoECAIQAw&biw=1920&bih=969&dpr=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